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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콜

그 날 강의가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가 강의실에 도착하고 난 후였다. 슬립 모드로 있던 휴대폰 화면을 켜고 메시지를 확인한 후. 그는 좀 더 일찍 확인할 걸, 하는 생각을 했다. 알람 기능을 꺼놓았던 탓이 컸다. 아이폰은 카카오톡 알림 기능을 꺼버리면 정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입을 다문 스마트폰은 벽돌이나 다름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 벽돌폰. 시간 낭비했다.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아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가 고민했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추적추적. 언제부턴가 내리기 시작한 비가 그를 맞이했다. 땅바닥에 떨어져 찰팍, 하고 부서지기 전까지 빗방울들이 합쳐지는 일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빗방울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언제였을까. 우산을 못 갖고 온 탓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오롯이 맞으며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길. 그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제 때 연락 받지 못한 탓에 과목 점수에 반역되는 학과주최행사에 참여하지 못해 약간의 불이익-불이익이라는 이름의 감점-을 당한 적도 있었고, 꼭 가고 싶었던 강연이 있었는데 시간이 변동된 걸 제 때 알지 못한 바람에 못 들은 적도 있었다. 국어 작문 조별 모임 때는 30분 전에 겨우 연락이 닿아 부랴부랴 준비해서 나간 기억도 있었다. 그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전화까지는 안 바라니까 문자나 한 통 넣어주지, 하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은 그가 카톡 알림을 켜놓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었고 몇몇은 데이터가 없어서 겪은 경험이었다. 이런 아쉬움은 대체로 그가 카톡 알림을 켜놓는다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카톡 알람은 고문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학과 동아리와 중앙 동아리, 조별과제 팀, 기타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카톡 대화가 쏟아져 내렸다. 대부분은 자체로 그에게 별 의미 없는 내용이거나 당장 쓸 데가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 대화들에 일일히 신경을 쓰는 건 퍽 귀찮은 일이었다. 놓친 대하를 되돌려 보는 것도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는 카톡 알림을 꺼놓고 정기적으로 대화를 읽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하루 몇 번 정도면 일찍 공지되는 중요한 소식은 대부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습관 때문에 그에게 갑작스럽게 전달된 카톡을 읽기란 힘들 일이었다. 어김없이 이런 사태는 반복되었다. 쏟아지는 대화 속에서 그가 필요한 단어를 제때 잡아채는 것은 운 좋게 타이밍이 맞아 떨어져야 가능했다. 쏟아지는 문장들이 그의 휴대폰 속에서 하는 것이라곤 배터리를 갉아먹는 것밖에는 없었다.

스콜이라는 단어를 배운 어린 시절. 언제였을까. 그 후로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스콜이 내렸으면 하는 막연한 희망을 종종 품던 적이 있었다. 그의 상상은 퍼붓는 빗속에서 상쾌한 기분으로 젖어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하면 기분 좋은 그런 상상이었으나 그만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스콜과 마주하는 것 그가 사는 곳에서 절대 찾아올 수 없는 순간이었다. 많은 수분이 금새 모여, 내리지 않고서 더는 버틸 수 없는 구름이 아열대지방에서 나올리는 없었다. 설사 그럴 수 있다 해도 그가 사는 곳은 아열대지방 도시 중에서도 비구름이 잘 형성되지 않는 곳이었다.

예전. 비가 많이 내렸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있던 그와는 달리 그의 이웃들은 비가 많이 내리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강이 범람할 일도, 홍수가 날 일도, 무엇보다 버스 운행이나 지하철 이용, 차량 운행이 제한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린 그는 그들의 생각이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나기를 맞으며 도서관으로 가고 있는 지금. 그는 이웃들이 왜 그렇게 변함없는 걸 좋아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푸른 눈동자

책장에 꽂힌 책 사이에선
쿰쿰한 살냄새가 났다
털이 무성한 페이지를 쓰다듬는
여린 손 헤진 표지를 푸른
눈동자를 가장 사랑한다
글자들을 몇 번씩 돌이킨 적이 있다
그 글자들을 몸에 새길 수 있을까

그 딴엔 곧잘 여러 책에 입 맞춘다 생각한다
젊은 책은 사과만큼 싱싱하다
한 입 베어 물면 막 잉크 마른 냄새
손 안에 가득 찬다 사각사각
생기 있는 단어들이 빈 노트 위에 자리한다
연필로 적히는 삶의 습작들
몇 번 쓰다 지우개로 지워지는

펜으로 적고 싶은 건 오래된 책의 문장
종이 위 쏟아진 커피처럼 얼룩 남는
글자 한 획에는 그 만큼의 세월이 녹아 있다
타이어만큼 질긴 단어들
씹어도 잘게 잘릴 기미 없이
삼켜버리면 피부로 될 수 있을까

껌처럼 질겅거리다 이내
단어들을 뱉어낸다
한 문장만 빼낸 채
눈동자는 책을
덮었다

그의 글자들 빠르게
빈 종이를 채워나가고
얇은 수염 머리카락
모두 잘려나가고
다시 자라고
다시 잘려나가
굵어지고 또
무성해지고
면도되길 몇 시절 지나
피부에선 상처 아문
쿰쿰한 냄새를 풍길 쯤

그가 책장에 꽂혔다
곁엔 사람 냄새 나는 책들 그는
어느 순간엔가 꺼내져 펼쳐진다

헤진 표지
억센 피부를 쓰다듬는 여린 손가락으로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

일기

어제로부터의 문을 잠깐 걸어두고
내일을 쫓는 단어를 찾는 손

텅 빈 종이 위 오늘을 적는다
몸에 맞지도 않는 넓은 필체 하루
페이지를 넘기고 바라보는
눈동자 속으로 시침같이
매일을 지나다 가끔 죽는 시계처럼
걸음을 멈추고 마주하는 다른 것
넋놓고 흘리다 건전지 갈고
다시 벽에 걸리면

어제로부터의 문을 잠깐 걸어두고
내일을 쫓는 문장을 쓰는 손

텅 빈 종이를 빽빽히 채워야 해
몸이 불어나 꽉 조이는 작은 필체
하루 페이지를 넘기고 바라보는
눈동자 속으로 초침처럼
달려 나가다 미아가 되어
길잡이를 찾다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도 헤맬 수는 없지 먼저
달리는 게 좋은 삶 망설이다
틈 찾아서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어제로부터의 문을 잠깐 걸어두고
내일을 쫓는 펜을 쥔 오른손

텅 빈 종이 위에 오늘을 쓰는
어울리지 않는 불안한 필치
하루 페이지를 넘기고
바라보는 눈동자
속으로 별을 찾고
조심스레 한 걸음
시계 분침 가듯
한 발자국을 내딛다
글자 하나를 마주할 수 있다면
지금이 빛날 수 있다면

둘의 시선

얇은 유리문 너머 두꺼운 공기
사이로 선 그림자 두 개

둘의 눈이
마주쳤다 하나 고개를
돌렸다 슬그머니 빗소리
들리고 소리 없이

뒤따르는 눈동자

ㅇ_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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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Hills - Don’t Be Afraid: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 독후감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이라니 꼭 허지웅같은 이름이다. 사정이라니. 탁 펼치니 서문이 나오고 답지 않게 진지한 글자로 그가 말한다.
"이 책은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아니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어 다음 장을 넘기니 그 뒤엔 ‘갑수씨의 기묘한 섹스’에 관한 내용이 기다리고 있다.
개포동 정자왕 김갑수씨는 ‘내’가 보기에 괴물같은 사람이다. 행복하고 행복한 덕에 행복인 줄 모르던 사랑을 떠나보낸 후, 그는 사랑을 잊으려 거침없이 여자들과 섹스하기 시작했다. 그의 많았던 관계는 물론 흡족했던 부분이 있을지언정, 그것이 연애로, 혹은 사랑으로, 아님 결혼으로 지속되지는 않았다.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연애의 아쉬움을 잊으려 섹스를 시작했던 그에게 섹스가 남겼던 것은 상처 뿐이었으리라. 섹스가 여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공이라 쉬이 여기는 뭇 남자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그에게 섹스는 실패의 기억들이다.
그러나 그가 연애(혹은 연애시도)를, 아무리 이해할래야 할 수 없는 여자들과의 관계를 그만둘 수는 없다. ‘나’에게 그는 자신의 친구 얘기를 털어놓으며 말한다. 친구가 아무리 목사가 어떻다 신심이 어떻다 해도 교회 가는 걸 포기할 수 없듯이 우리 또한 연애하는 걸 포기할 수는 없다고. 행복해지긴 해야겠으니까. 천국에는 가야겠으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대충 뭐 이거랑 별반 다를 바 없는 것같다.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나큰 목적을 위해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돌고 도는 삶과 그 삶에서 고통받음에 벗어나질 못해서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던져졌기에, 우리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 속으로 내쳐졌기에 살아있다. 우리의 종착지는 ‘왜 살아있는지’ 만큼 꽤나 단순하다. 바로 죽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건 어떻게 죽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뭐라고 하고 행복하게 죽느냐, 아님 그냥 죽느냐. 휘트먼의 시가 생각난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시였다. 그 대답은 이랬다. 네가 여기 있다는 것. 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 힘찬 연극은 계속되고, 네가 시 한 구절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시 한 구절을 찾아낸 사람은 아마 행복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그 한 구절이 거저 오지는 않는다. 행복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부대껴야 한다. 이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천국 가려고 교회가듯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천 번 흔들리든 그렇지 않든. 그러다 운 좋게 한 행복 얻어내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야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이 말에 책임져야 할만큼 세상에 뭐가 있는 건 아닌듯 하다.

슈크림 러브 독후감 혹은 보류할 글

한 여자가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지하 주차장. 여자는 울먹이고 남자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그의 손을 뿌리치는 그녀를 잡으려고 노력한다. 아무래도 그가 바람을 핀 모양이다. 거듭되는 남자의 손을 강하게 뿌리치고 여자는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날린다.
"어떻게 사랑이 그렇게 쉽게 변하니!"
여자는 훌쩍이며 자기 차로 간다. 눈물을 머금은 여자의 차가 떠나고 남자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본다. 이제 와서는 너무나도 흔히 접할 수 있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이런 영화도 있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대사가 나오는 영화였다. 거기서 유지태라는 배우는 유약한 남자 캐릭터 역할을 맡았었는데, 그 캐릭터가 하는 대사가 그랬다.
"어떻게 사랑이 변해요?”
다행이도 그는 울고불고 하면서 그 대사를 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눈물을 흘리는 대신 그녀를 못 잊고 계속 그녀 곁을 맴돌았다. 아니, 차라리 시원하게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깨끗이 인연을 끊는 게 좋은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자든 남자든 무릇 사랑을 하는 당사자들은 사랑이라는 게 변하면 안 되는 거라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연애라는 게 얼마를 주고 얼마를 받아내는 계약도 아닌데 서로의 감정을 자기들 좋을 대로 규정하고 이렇게 해 주기로 약속 해놓고 왜 이렇게 안해, 라고 주장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사람들이 쿨하게 행동하려는 건 그래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사실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조금은 성숙한 행위로 보이니까. 그런 쿨한 행동을 한 인물에는, 쿨한 이혼을 한 시치로가 포함되어 있을 테다.

슈크림 러브의 주인공인 무카이 시치로는 ‘깔끔한’ 이혼을 하고도 ‘전처’를 ‘아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뭐가 그렇게 아쉬운지 ‘아내’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이혼의 원인은 아내의 바람인데다가 자기 자신은 아쉬울 행동을 한 적도 없는데. 전처를 전처로 여기지 못하는 것이 미련이라고 생각은 해도 실상 그렇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의 ‘아내’도 미련이 있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별거를 시작하자 남편 집에 찾아와 커튼을 다니 마니 같은 자질구레한 것으로 말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남편이 업무용으로 참고하기 위해 받아온(시치로는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다) 텔레비전 게임도 하고, 내심 잡아줬으면 하는 말투로 말하기도 하고, 이혼한 후에도 주기적으로 휴대폰 문자를 보낸다. 둘은 같은 미용사에게 머리를 자르는데, 여덟 달이 넘도록 그 미용사가 둘이 갈라선 지도 모른다면. 제 삼자 입장에서는 이들이 정말 이혼한 사이인지 아님 그냥 따로 사는 부부인지 헷갈릴 정도다. 
시치로의 친구, 츠다의 말이 떠오른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시치로와 그의 아내는 ‘사랑’이라는 매개를 바탕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냈으리라. ‘그거’ 달라고 하면 용케 식초인 줄 알아서 집어 주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생일 선물로 뭐가 좋을지 짐작해 낼 수 있을 정도 까지. 좋든 싫든 그런 서로의 문화를 만들어낸 것에 비해, 너무 쉽게 갈라져버린 둘은 아직 서로의 문화를 버릴 만큼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사랑이 만들어낸 실에 얼기설기 얽혀, 둘은 법적으로는 따로따로라도 실상 그렇지는 못하다. 그렇기에 둘은 어색하게나마 연락을 주고받고 서로를 챙겨준다. 문화를 만들어낸 만큼의 시간이나 힘이 그 문화를 버리기 위해서도 든다. 이혼을 했을지언정 이별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하는 둘은 이별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서로에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친구인 츠다는 여러 여자에게 찝쩍대는 사람이다. 삼십대의 젊은 사장인 그는 캬바레 걸(업소녀인 모양이다)에서 그저 그런 여자까지 찝쩍대지 않는 여자가 없다. ‘여자가 그저 그러면 어떻게 할거야’라는 시치로의 말에 ‘일단 하겠지 욕구해소용으로’라고 대답하는 그의 말이 단적으로 그런 성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사실 문화를 만들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츠다나 시치로가 친하게 지내는 캬바레 걸, 시즈에는 츠다가 사실 시치로를 부러워한다는 말을 한다. 좋은 여자를 얻어서도 아니고, 많은 여자랑 자 봐서도 아니고, 그가 ‘성적 매력이 없는’ 시치로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가 ‘결혼은 문화’라는 통찰을 해낸 모양이다. 여러 여자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그는 시치로가 가진, 아니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진 문화를 만드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부족한 것을 자각할 때 깨달음을 얻는다. 시치로그 가의 말을 쉬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가 이미 문화라는 실에 얽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슈크림 러브의 끝은 시치로와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마무리 짓는 것으로 끝난다. 여전히 시치로의 아내인 나미는 시치로에게 문자를 보내지만, 시치로는 그녀를 아내가 아니라 나미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되고, 새로 사랑하는 사람도 찾게 된다. 하나의 문화에서 떨어져 나와 다시 각자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두 사람의 엔딩이다. 아직 약간씩, 서로 의지하는 게 편하긴 하지만(감기에 걸려 앓아 누웠을 때라든가), 부부가 아닌 개인으로, 그리고 또 새로운 서로의 문화로 변화해 가는 시치로의 모습은 내심 흐뭇한 느낌을 들게 한다. 마음 따듯한 새드 엔딩이다.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좋든 싫든 나의 문화를 변화시켜 나간다. 뮤즈, 라디오헤드를 좋아하던 사람이 검정치마의 노래를 찾아 듣는 것처럼, 너무나도 큰 변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휴대폰에 저장된 노래만큼 보수적이고 개인적인 문화는 없다고 장담한다). 변화는 늘 불안하고 항상 성공적이지도 않다. 새로운 것에 익숙해져야 하고, 익숙해진다고 해도 실상 내게 얻어지는 것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변화는 그 자체로 멋진 의미를 가진다. 새로운 자신, 어제는 절대로 될 수 없을 내가 되는 것은 작은 한 발자국을 내딛는 행위지만, 그 끝에서는 완전히 다른 것이 기다리고 있을 테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하고 싶다. 이왕이면 섹스도 하고 싶다. 여차저차 해서 결혼도 해버리자. 그러다 잘 안돼서 이혼하게 된다면, 시치로처럼 하나였던 문화를 그리워도 해 보고, 새로운 문화를 찾지 못해서 방황도 해 보고. 그러다 다시 문화를, 새로운 누군가와의 문화를 찾게 되면 다시 거기에 푹 빠지는 거다. 중요한 건 거기서 있는 힘껏 행복할 것.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랑을 할 테니까. 막상 죽으라고 힘을 서도 오래가지 않는 게 행복일 테다. 사랑은 야속해서 행복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힘에는 책임이 따르듯 행복에도 불행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도 나는 사랑하고 싶다. 행복을 겪든 그보다 더 많은 불행을 겪든 그 사랑의 긑에 있을 나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나일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한 발자국을 내딛어야겠지? 휴가나가고 싶다.

140319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구름이나 그나 똑같다. 바람에 떠다니는 작은 알갱이가 모여서 구름이 되듯 그는 산산조각난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슬쩍 비웃듯 물 알갱이 몇 개들이 그와 마주쳤다 사라진다. 속알머리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이다. 그는 혹여나 제 몸이 식을까 솓아지는 것들이 범접할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친다. 그렇게 도망만 치고 있다.

그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달라질 지도 모르지. 언젠가 그 속알머리 없는 것들을 마주하고 싶어 온 몸을 적셨던 기억이 든다. 에지 그는 더이상 우산 없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 의자에 앉아서 할 일이 없는 그는 TV를 켠다, 껐다, 켰다, 끈다. 그러다 일어나 책장을 살피고 마음에 드는 이름들을 찾다, 다시 앉아 TV를 켰다, 끈다, 켠다, 껐다. 바람이 불어서 자신을 어딘가로 데려가거나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다못해 내일조차도.

뭘 할까. 그는 결국 서랍 속 필통과 노트를 꺼내 손 닿는 느낌이 그리운 샤프를 들고 무언가를 적어나갔다. 이리 저리 흩어진 생각 중 하나를 붙잡고. 사각 사각. 종이 긁히는 소리가 새어나간다. 다시 볼 생각도, 마음에 안들 단어도, 지울 구절 조차 없을 텐데 그는 굳이 샤프를 쓴다. 철 지난 습관 중 하나일까. 글에 쓸모없는 자국이 참 많다고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자고 있는 사람을 그려내는 말이나, 난데없이 써놓은 하늘색이. 자신도 그런 것이라는 마음을 애써 달래는 듯 그는 필요없는 부분들을 늘려나가고 있다. 애써 달래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다. 알게 모르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그가 유리되는 이곳. 느리게, 어쩌면 애써 걷고 있는지도.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발자국을 남기며 한 발, 한 발. 채워나가는 것이 버겁다고 생각될 때, 그는 툭 하고 노트를 닫는다. 여기까지. 너무 멀리 와버린 건지도 몰라. 글을 떠올리지 않게 된 그가 뜨뜻 차가운 비를 맞고 잇을 자신에게 속삭인다. 낭만적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누구보다 낭만적이라는 것을 자신에게 열심히 감추려 한다.

문득, 떨어지는 것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 하며 그는 창 밖을 바라본다. 금새 말라버리는 그들이 원망스러운 눈치. 그도 다시 말라간다. 맞아. 빨래를 할 생각이었어. 테크와 다우니와 쌓여있는 허물들을 들고 그는 세탁기 앞으로 향한다. 51분. 그러고 나선 자는게 좋을 지도 몰라, 그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는다. 누군가에게 안기고픈 순간이다. 쓸쓸히 휘감기는 이불과 체온을 나눌 모포와 함께 그는 꿈을 꾸고싶어 한다. 달콤한 꿈이었으면 좋겠는데, 아니 달콤한 꿈을 꿀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