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트윗:

슈크림 러브 독후감 혹은 보류할 글

한 여자가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지하 주차장. 여자는 울먹이고 남자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그의 손을 뿌리치는 그녀를 잡으려고 노력한다. 아무래도 그가 바람을 핀 모양이다. 거듭되는 남자의 손을 강하게 뿌리치고 여자는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날린다.
"어떻게 사랑이 그렇게 쉽게 변하니!"
여자는 훌쩍이며 자기 차로 간다. 눈물을 머금은 여자의 차가 떠나고 남자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본다. 이제 와서는 너무나도 흔히 접할 수 있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이런 영화도 있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대사가 나오는 영화였다. 거기서 유지태라는 배우는 유약한 남자 캐릭터 역할을 맡았었는데, 그 캐릭터가 하는 대사가 그랬다.
"어떻게 사랑이 변해요?”
다행이도 그는 울고불고 하면서 그 대사를 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눈물을 흘리는 대신 그녀를 못 잊고 계속 그녀 곁을 맴돌았다. 아니, 차라리 시원하게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깨끗이 인연을 끊는 게 좋은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자든 남자든 무릇 사랑을 하는 당사자들은 사랑이라는 게 변하면 안 되는 거라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연애라는 게 얼마를 주고 얼마를 받아내는 계약도 아닌데 서로의 감정을 자기들 좋을 대로 규정하고 이렇게 해 주기로 약속 해놓고 왜 이렇게 안해, 라고 주장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사람들이 쿨하게 행동하려는 건 그래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사실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조금은 성숙한 행위로 보이니까. 그런 쿨한 행동을 한 인물에는, 쿨한 이혼을 한 시치로가 포함되어 있을 테다.

슈크림 러브의 주인공인 무카이 시치로는 ‘깔끔한’ 이혼을 하고도 ‘전처’를 ‘아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뭐가 그렇게 아쉬운지 ‘아내’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이혼의 원인은 아내의 바람인데다가 자기 자신은 아쉬울 행동을 한 적도 없는데. 전처를 전처로 여기지 못하는 것이 미련이라고 생각은 해도 실상 그렇지는 못한 모양이다.
그의 ‘아내’도 미련이 있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별거를 시작하자 남편 집에 찾아와 커튼을 다니 마니 같은 자질구레한 것으로 말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남편이 업무용으로 참고하기 위해 받아온(시치로는 게임 시나리오 라이터다) 텔레비전 게임도 하고, 내심 잡아줬으면 하는 말투로 말하기도 하고, 이혼한 후에도 주기적으로 휴대폰 문자를 보낸다. 둘은 같은 미용사에게 머리를 자르는데, 여덟 달이 넘도록 그 미용사가 둘이 갈라선 지도 모른다면. 제 삼자 입장에서는 이들이 정말 이혼한 사이인지 아님 그냥 따로 사는 부부인지 헷갈릴 정도다. 
시치로의 친구, 츠다의 말이 떠오른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시치로와 그의 아내는 ‘사랑’이라는 매개를 바탕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냈으리라. ‘그거’ 달라고 하면 용케 식초인 줄 알아서 집어 주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생일 선물로 뭐가 좋을지 짐작해 낼 수 있을 정도 까지. 좋든 싫든 그런 서로의 문화를 만들어낸 것에 비해, 너무 쉽게 갈라져버린 둘은 아직 서로의 문화를 버릴 만큼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사랑이 만들어낸 실에 얼기설기 얽혀, 둘은 법적으로는 따로따로라도 실상 그렇지는 못하다. 그렇기에 둘은 어색하게나마 연락을 주고받고 서로를 챙겨준다. 문화를 만들어낸 만큼의 시간이나 힘이 그 문화를 버리기 위해서도 든다. 이혼을 했을지언정 이별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하는 둘은 이별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서로에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친구인 츠다는 여러 여자에게 찝쩍대는 사람이다. 삼십대의 젊은 사장인 그는 캬바레 걸(업소녀인 모양이다)에서 그저 그런 여자까지 찝쩍대지 않는 여자가 없다. ‘여자가 그저 그러면 어떻게 할거야’라는 시치로의 말에 ‘일단 하겠지 욕구해소용으로’라고 대답하는 그의 말이 단적으로 그런 성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사실 문화를 만들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츠다나 시치로가 친하게 지내는 캬바레 걸, 시즈에는 츠다가 사실 시치로를 부러워한다는 말을 한다. 좋은 여자를 얻어서도 아니고, 많은 여자랑 자 봐서도 아니고, 그가 ‘성적 매력이 없는’ 시치로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가 ‘결혼은 문화’라는 통찰을 해낸 모양이다. 여러 여자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그는 시치로가 가진, 아니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진 문화를 만드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부족한 것을 자각할 때 깨달음을 얻는다. 시치로그 가의 말을 쉬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가 이미 문화라는 실에 얽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슈크림 러브의 끝은 시치로와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마무리 짓는 것으로 끝난다. 여전히 시치로의 아내인 나미는 시치로에게 문자를 보내지만, 시치로는 그녀를 아내가 아니라 나미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되고, 새로 사랑하는 사람도 찾게 된다. 하나의 문화에서 떨어져 나와 다시 각자의 문화를 만들어내는 두 사람의 엔딩이다. 아직 약간씩, 서로 의지하는 게 편하긴 하지만(감기에 걸려 앓아 누웠을 때라든가), 부부가 아닌 개인으로, 그리고 또 새로운 서로의 문화로 변화해 가는 시치로의 모습은 내심 흐뭇한 느낌을 들게 한다. 마음 따듯한 새드 엔딩이다.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좋든 싫든 나의 문화를 변화시켜 나간다. 뮤즈, 라디오헤드를 좋아하던 사람이 검정치마의 노래를 찾아 듣는 것처럼, 너무나도 큰 변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휴대폰에 저장된 노래만큼 보수적이고 개인적인 문화는 없다고 장담한다). 변화는 늘 불안하고 항상 성공적이지도 않다. 새로운 것에 익숙해져야 하고, 익숙해진다고 해도 실상 내게 얻어지는 것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변화는 그 자체로 멋진 의미를 가진다. 새로운 자신, 어제는 절대로 될 수 없을 내가 되는 것은 작은 한 발자국을 내딛는 행위지만, 그 끝에서는 완전히 다른 것이 기다리고 있을 테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하고 싶다. 이왕이면 섹스도 하고 싶다. 여차저차 해서 결혼도 해버리자. 그러다 잘 안돼서 이혼하게 된다면, 시치로처럼 하나였던 문화를 그리워도 해 보고, 새로운 문화를 찾지 못해서 방황도 해 보고. 그러다 다시 문화를, 새로운 누군가와의 문화를 찾게 되면 다시 거기에 푹 빠지는 거다. 중요한 건 거기서 있는 힘껏 행복할 것.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랑을 할 테니까. 막상 죽으라고 힘을 서도 오래가지 않는 게 행복일 테다. 사랑은 야속해서 행복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힘에는 책임이 따르듯 행복에도 불행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도 나는 사랑하고 싶다. 행복을 겪든 그보다 더 많은 불행을 겪든 그 사랑의 긑에 있을 나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나일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한 발자국을 내딛어야겠지? 휴가나가고 싶다.

140319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구름이나 그나 똑같다. 바람에 떠다니는 작은 알갱이가 모여서 구름이 되듯 그는 산산조각난 생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슬쩍 비웃듯 물 알갱이 몇 개들이 그와 마주쳤다 사라진다. 속알머리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이다. 그는 혹여나 제 몸이 식을까 솓아지는 것들이 범접할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친다. 그렇게 도망만 치고 있다.

그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달라질 지도 모르지. 언젠가 그 속알머리 없는 것들을 마주하고 싶어 온 몸을 적셨던 기억이 든다. 에지 그는 더이상 우산 없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 의자에 앉아서 할 일이 없는 그는 TV를 켠다, 껐다, 켰다, 끈다. 그러다 일어나 책장을 살피고 마음에 드는 이름들을 찾다, 다시 앉아 TV를 켰다, 끈다, 켠다, 껐다. 바람이 불어서 자신을 어딘가로 데려가거나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다못해 내일조차도.

뭘 할까. 그는 결국 서랍 속 필통과 노트를 꺼내 손 닿는 느낌이 그리운 샤프를 들고 무언가를 적어나갔다. 이리 저리 흩어진 생각 중 하나를 붙잡고. 사각 사각. 종이 긁히는 소리가 새어나간다. 다시 볼 생각도, 마음에 안들 단어도, 지울 구절 조차 없을 텐데 그는 굳이 샤프를 쓴다. 철 지난 습관 중 하나일까. 글에 쓸모없는 자국이 참 많다고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자고 있는 사람을 그려내는 말이나, 난데없이 써놓은 하늘색이. 자신도 그런 것이라는 마음을 애써 달래는 듯 그는 필요없는 부분들을 늘려나가고 있다. 애써 달래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다. 알게 모르게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그가 유리되는 이곳. 느리게, 어쩌면 애써 걷고 있는지도.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발자국을 남기며 한 발, 한 발. 채워나가는 것이 버겁다고 생각될 때, 그는 툭 하고 노트를 닫는다. 여기까지. 너무 멀리 와버린 건지도 몰라. 글을 떠올리지 않게 된 그가 뜨뜻 차가운 비를 맞고 잇을 자신에게 속삭인다. 낭만적이지 않을 줄 알았는데, 누구보다 낭만적이라는 것을 자신에게 열심히 감추려 한다.

문득, 떨어지는 것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 하며 그는 창 밖을 바라본다. 금새 말라버리는 그들이 원망스러운 눈치. 그도 다시 말라간다. 맞아. 빨래를 할 생각이었어. 테크와 다우니와 쌓여있는 허물들을 들고 그는 세탁기 앞으로 향한다. 51분. 그러고 나선 자는게 좋을 지도 몰라, 그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는다. 누군가에게 안기고픈 순간이다. 쓸쓸히 휘감기는 이불과 체온을 나눌 모포와 함께 그는 꿈을 꾸고싶어 한다. 달콤한 꿈이었으면 좋겠는데, 아니 달콤한 꿈을 꿀 수 있기를.

그런 눈동자

컴퓨터 화면에 뜨는 글자들을
주욱 바라보는 눈동자
책을 읽는 눈동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눈동자
영화를 보는 눈동자
TV를 트는 눈동자
긴 머리카락을 바라보는 눈동자
짧은 머리카락과 마주하는 눈동자
총을 들고 선 눈동자
아이를 어르는 눈동자
손님을 맞는 눈동자
커피를 시키는 눈동자
여럿 앞에 선 눈동자
혼자를 바라보는 눈동자
시위하는 눈동자
그림 그리는 눈동자
퇴근하는 눈동자
얻어 맞는 눈동자
술 마시는 눈동자
담배 피는 눈동자

그러다 잠깐
고개를 돌리고

자기의 얼굴을 돌아보는 눈동자

흔들리는 눈동자

스며드는 시간에 희끄무렇게 옷이 젖은 계절

언제쯤일까

기를 쓰고 달리다 덩그러니
홀로 숨 몰아쉬는 그 저어만치
지나온 돌멩이를 바라본다 발이
앞으로 천천히 걷는다 오롯이

흔들리는 눈동자

131106

계절이 점점 추워지는 것을 나무랄 사람이 하나 없어 서글픈 오후가 무언가를 적었다 일탈이라고 할만한 것이 아니었다고 깨닫고는 이내 체념하는 시간 속 소년은 그것이 아픈 것이라고 되뇌였다 일탈이 아프다는 것은 시간이 알고 있다 그런 곳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소년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태양이 져버린 땅 바람이 불었고 계절은 제 몸을 추스렸다 뱀 한 마리가 기어나온다면 그에게 이름을 지어줄텐데 나무가 된 소년은 딱딱해진 다리를 움직이며 땀을 흘렸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아마도

글자들은 살아서 귓구멍 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것이 견디기 힘들어 귀에 쌓인 글자를 하나 한 덜어낸다 그 행위가 얼마나 쓸데 없는 지는 글자만 안다 결국 다 덜어내지도 못하고 지친 손이 축 늘어진다 노트북 자판 위에 눕는 손은 이따금 따뜻해지는 그녀의 몸을 어루만진다 퍼내면 퍼낼수록 식어가는 몸 찌뿌듯하게 울부짖는다

O Me! O Life!

Oh me! Oh life! of the questions of these recurring,
Of the endless trains of the faithless, of cities fill’d with the foolish,
Of myself forever reproaching myself, (for who more foolish than I, and who more faithless?)
Of eyes that vainly crave the light, of the objects mean, of the struggle ever renew’d,
Of the poor results of all, of the plodding and sordid crowds I see around me,
Of the empty and useless years of the rest, with the rest me intertwined,
The question, O me! so sad, recurring—What good amid these, O me, O life?

Answer.
That you are here—that life exists and identity,
That the powerful play goes on, and you may contribute a verse.

O Me! O Life! by WALT WHITMAN

오 나여! 오 삶이여! 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질문,
믿음 없는 이들의 끝없는 행렬, 어리석은 자들로 가득한 도시,
영원히 자신을 질책하는 나, (나보다 어리석은 자, 믿음 없는 자가 어디 있을까?)
허망하게 빛을 열망하는 눈들, 비천한 것들, 언제나 다시 시작되는 투쟁,
모든 것의 부족한 결과, 내 주위에 보이는, 발을 질질 끌며 걷는 지저분한 군중,
공허하고 쓸모없는 나머지 세월, 그 세월에 나도 얽매여 있노라.
오 나여, 반복되는 너무 슬픈 질문, 이 모든 것들 가운데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 나여, 오 삶이여?

대답은 바로 이것.
그것은 네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삶이 존재하고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힘찬 연극은 계속되고, 너도 시 한 구절을 기여할 수 있다는 것.

원문출처: http://www.poetryfoundation.org/poem/182088
번역문 참고: http://blog.naver.com/enthua?Redirect=Log&logNo=60120155175